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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쌓아 올린 도면, 이명진 작가와의 대화

흙으로 쌓아 올린 도면, 이명진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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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흙으로 쌓아 올린 도면, 이명진 작가와의 대화
상품 간략설명 Terre. 프랑스어로 흙이라는 뜻이다. 그래, 모든 도자기는 흙에서 탄생했지. 문득 어젯밤 파스타를 담아 먹은 새하얗고 매끈한 접시 역시 흙으로 빚은 물건이라는 사실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의 반대편에서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명진 작가는 terre et terre (떼르에떼르), 즉 ‘흙과 흙'이라는 뜻의 도자 브랜드를 운영한다. 집에 있는 하얗고 매끈한 그릇과 달리 흙의 색과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면. 완벽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특유의 외형은 이 도자기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지나왔는지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이 대상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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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쌓아 올린 도면, 이명진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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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e. 프랑스어로 흙이라는 뜻이다. 그래, 모든 도자기는 흙에서 탄생했지. 문득 어젯밤 파스타를 담아 먹은 새하얗고 매끈한 접시 역시 흙으로 빚은 물건이라는 사실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의 반대편에서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명진 작가는 terre et terre (떼르에떼르), 즉 ‘흙과 흙'이라는 뜻의 도자 브랜드를 운영한다. 집에 있는 하얗고 매끈한 그릇과 달리 흙의 색과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면. 완벽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특유의 외형은 이 도자기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지나왔는지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이 대상에게서.



안녕하세요, 떼르에떼르와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떼르에떼르는 도자기의 기본 재료인 흙의 물성을 표현하는 브랜드입니다. 건축을 모티브로 떼르에떼르에서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들고, 작가로써는 도자 오브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도예와 패션을 모두 공부하셨는데, 결국 도자를 선택하셨어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패션 디자이너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동경의 대상이자 직업이었어요. 그런데 입시 과정에서 도예과에 진학하게 되었죠. 다행히도, 그렇게 발을 들인 도예가 전혀 괴롭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강제로 시켰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물론 패션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복수 전공을 했고, 졸업 후에도 패션 회사 디자인실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상이 너무 높아서였을까요, 옷이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과정이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원단, 봉제, 부자재 등 모두 각각의 업체를 관리하고 정작 제 손안에서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적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저는 무엇이 됐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걸. 그렇게 다시 흙을 만지게 되었답니다.


패션과 도예는 특히 속도 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 분야인데, 도자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패션의 속도는 정말 빠르죠. 유행도 금방 바뀌고 시즌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오는 쪽은 도자예요. 훨씬 직관적이죠. 옷이 마네킹에서 핀질할 때, 봉제할 때와 모델이 입었을 때의 느낌이 모두 다르다면 흙은 그야말로 정직한 재료예요.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어떤 방향과 강도로 힘을 주었는지, 어떻게 자르고 붙이고 다듬었는지가 모두 결과물에 드러납니다. 언제나 진실되게 작업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은데요, 떼르에떼르라는 브랜드를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브랜드와 개인 둘 다 활동하고 있어요. 떼르에떼르는 대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고자 만든 브랜드죠. 처음에는 작업실에서 오브제를 소개하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했는데, 점점 오브제 구매 문의가 많아지면서 제품군으로써의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도예가로서의 철학과 태도, 조형적 요소를 듬뿍 담은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서 작품 활동도 이어가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 @ml.c___)

’작품'과 ‘제품', 호칭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있는데요, 떼르에떼르의 사물들이 어떻게 불렸으면 하나요?
떼르에떼르의 기물들은 ‘제품’임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무게의 흙으로 같은 작업 공정을 거쳐 동일하게 제작되죠. 물론 수작업이다 보니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지만요. 작품과 제품 사이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 작품은 하나하나 많은 고민을 하지만 제품은 초반 디자인 단계에 모든 생각을 쏟아붓고 생산은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겠죠.

브랜드 이름에 걸맞게 흙 본연의 느낌이 물씬 나요.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만든 흔적이 듬뿍 담겨있고요.
말씀하신 손맛은 코일링(점토를 둥글고 길게 말아서 포개고 합치는 과정)과 핀칭(손가락으로 꼬집듯이 점토를 성형하는 과정)이라는 기법으로 인해 생기는 질감이에요. 대학생 때는 깔끔한 단면을 선호해서 판 성형이나 캐스팅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러한 기법들은 형태를 만들어가는 도중에 수정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어느 날 코일링 작업을 하는 친구를 보고 제 작업에도 적용해 보니 그때그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손으로 흙을 쌓고 문지르는 방식으로 인해 자연적인 표면도 얻게 되었고요. 특히 건축을 모티브로 삼아 단순한 형태를 지향하는 제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 쭉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흙의 느낌이 나는 것은 단지 질감 때문이 아니에요. 실제로 여러 가지 흙을 다양한 비율로 섞어서 반죽해요. 검은색 제품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흙 그 자체의 색감인 거죠. 저의 일상은 정말 흙투성이네요 (웃음).


다양한 소재 중 특별히 건축을 도자와 결합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 또한 매우 사적인 이야기가 되는데요, 저의 최초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바로 건축가였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아파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모델하우스에서 분양 안내 책자를 수집해서 도면을 따라 그리곤 했으니까요. 비록 건축가의 길을 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공간을 만드는 일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아온 저의 관심사를 관통하는 기둥은 언제나 건축이었어요. 그러니 도자를 통해 저만의 미감을 드러내기에도 건축적 형태나 문법이 가장 자연스럽죠. 건축과 도자를 결합할 때에는 단순히 미니어처적인 재연이 아닌, 건축물 특유의 비례나 볼륨 같은 요소를 적용하고 있어요.


건축적인 시각으로 도자를 접근하면 일반 도예품들과 어떤 차이를 내나요? 공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 보다 큰 작업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바로 ‘각'입니다.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으니 당연한 걸지도요. 기능이 있는 부분에도 공간감을 표현하려고 하는데요, Brutal Mug의 경우 손잡이에 벽이나 천장, 기둥 같은 공간적인 요소를 가미해 하나의 구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저의 작업 중 가장 큰 것은 가로가 150cm에 달하는 긴 형태를 4개로 나눈 뒤 합쳐서 만든 조명이었어요. 2021년에 선보인 <solid not void> 시리즈에 높이가 63cm인 오브제도 있고요. 사실 기술보다는 장비의 문제인데 (웃음) 더 큰 가마를 갖게 된다면 공간의 구조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기하학적이고 딱 떨어지는 형태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평소 성격도 그런가요? 업체들이 작가님과의 협업을 좋아할 것 같아요.
맞아요. 각 맞춰서 깔끔하게 정돈된 걸 좋아하고, 작업에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입니다. 이런 작업의 장점이 있다면, 파트너들의 컬러를 입히기 효과적이라는 거예요. 콜라보레이션을 하기에 용이하죠.

모두 수작업이라 같은 디자인이어도 동일한 제품이 나올 수가 없는데요, 그만큼 가치 있기도 하지만 유통에 어려움은 없나요? 있다면 어떻게 개선하고 있나요?
핸드 빌딩 기물의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생산성이에요. 대량 주문의 경우 한 달 이상 소요되기도 해요. 물론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제작 과정을 보완해서 처음보다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드라마틱하게 생산성을 높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성장해야 하기에, 현재 주력으로 하고 있는 핸드 빌딩은 유지하되 캐스팅 성형 기법을 활용한 라인업을 구축하는 게 목표예요.


로파와의 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가장 처음으로 정식 입점 제안을 주신 곳이 바로 로파였어요. 제품 가격이나 패키지, 배송 같은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기물 자체만 보고 연락하신 거예요. 혼자 작업하던 이전과는 다른 목표가 생겼고, 제품을 입점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나네요.

로파를 통해 새로이 열린 기회나 깨달음이 있었나요? 또한 로파와 협업하면서 좋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나요?
로파에 입점한 후에 정말 다양한 문의가 들어왔어요. 단순히 로파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로파의 기획과 감도 안에서 떼르에떼르를 소개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로파를 만난 것 자체가 큰 기회였고, 브랜드를 소개하고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제가 로파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창작자들과 업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벤트들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요. 제약이 없어 보여요. 항상 발전하고 있죠. 로파는 편집숍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하고, 재미있는 색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 같은 집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로파에는 ‘기회의 땅' 같은 기운이 있죠. 꾸준히 협업을 이어가고 계시는데, 성과를 낼 수 있는 고유한 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최근 작업은 로파에서 운영하는 식음 업장 온더홀과 협업하여 개발한 디저트 트레이인데, 두 브랜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운영되는 구조 덕분에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생각해요. 온더홀이라는 카페와 단독 협업했다면 이렇게나 저의 색을 듬뿍 담지 못했을 것이고, 로파와만 협업했다면 현장감이 떨어져 기물이 설득력을 잃었을 거예요.


온더홀 전용 식기를 만들면서 메뉴와의 조화를 많이 고민하셨을 텐데, 무엇에 중점을 두셨나요?
온더홀이 먼저 디저트를 개발하고, 그에 맞는 트레이를 만들어보자고 협업 제안을 주시면서 콘셉트를 ‘설계도'로 잡았어요. 매장에서 반복적으로 음식을 담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 식기로서의 기능성과 도자 기물로서의 심미성을 고루 갖추려고 했습니다. 건축물의 평면도 안에서 여러 선과 기호들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각형 틀 안에서의 높낮이, 너비 등의 변주를 주되 디저트와 찻잔, 커트러리가 놓이는 방식, 깊이, 여백, 사용하는 손의 동선 등을 고민했습니다. 메뉴가 돋보이는 톤을 잡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다양한 비율로 안료를 배합해서 발색 테스트를 수차례 진행했고, 결국 온더홀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컬러가 탄생했답니다.

기존에 하던 작업보다 더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작가님께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원형 트레이가 조금 어려웠어요. 디저트가 담기는 부분을 바닥에서 띄워야 했거든요. 그리고 도자기 작업 특성상 소성 (가마에서 고온으로 굽는 일) 전후로 기물의 크기가 12~15% 정도 줄어요. 최종적인 트레이 사이즈를 내기 위해 꽤 큰 작업을 해야 했죠.


온더홀에서 작가님의 기물을 사용하는 고객들을 마주할 텐데요,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세요?
제 손끝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을 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낯설고 떨리는 일이에요. 온더홀 협업의 경우 손님들뿐만 아니라 온더홀만의 특정 메뉴를 위해 개발했다는 점, 그 가치를 직원들이 인정해 주고 소중히 다뤄줄 거라는 점이 무척이나 감사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떼르에떼르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마음으로 사용했으면 하시나요?
떼르에떼르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공예품을 보다 손쉽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어요. 진정한 사치란, 사람의 손길과 노동의 가치가 담긴 물건을 매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생활의 모든 물건을 공예품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가장 편하고 가까운 물컵, 트레이 같은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흙을 한 줄 한 줄 쌓아 만든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가치를 알아보고 삶으로 들인 자신도 아끼는 마음이 자랐으면 좋겠어요.


점점 인지도가 쌓이면서 작가님의 워크 라이프나 브랜드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떼르에떼르를 찾아주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제품의 질에 대한 사명감이 커져요. 퀄리티와 사용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데요, 브랜드와 작가, 제품과 작품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게 제 삶의 중점인 것 같아요.


Interview with 
Artist
이명진은 서울을 기반으로 도자 작업을 하고, 동시에 세라믹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떼르에떼르를 운영중이다.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학사를 졸업 후 2020년부터 건축적인 매스를 공예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미니멀한 조형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점토의 물성을 그대로 살리는 코일링 기법이 주를 이루며, 건축물의 형태에서 오직 비례와 질감들의 미묘한 변화를 꾀한다. 2022년 오픈스튜디오 ⟨column⟩과 개인전 ⟨solid not void⟩, 2023년 오픈스튜디오 ⟨tilted balance⟩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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